2010년 1월 24일 일요일

사랑을 잃어버린 자

성경이 말한다. 너희가 내 말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하리라!고. 자유! 시간에서 자유, 돈에서 자유. 인간관계에서 자유. 건강에서 자유. 우리 모두의 바램이 이 ‘자유’라는 말에 담겨져 있다. 그 자유의 비결은 그 주님의 안에 ‘거함’에 있다.

거한다는 건 뭔가. 오늘 우리가 예배를 드리러 교회에 왔다. 여기가 거하는 곳인가? 목사인 제가 여러분을 방문한다. 그럼 여러분의 집에 내가 거하나요? 아침에 일터로 나간다. 거기가 거하는 곳인가? 그럼 거하는 곳은 어떤 곳인가? 내가 먹고 쉬고 자는 곳이다. 내 가족이 있는 곳, 맘을 나누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 거하는 곳이다. 내가 예수 안에 거한다 함은 내가 예수와 함께 맘을 나눈다는 의미이다.

주님과 어떻게 맘을 나눠? 그분의 맘을 알 때 나눈다. 사람들은 신앙을 거꾸로 안다. 내가 주님께 나아갈 만 해야 나갈 수 있다 한다. 실제로 내가 친구를 만날 때 친구를 만날 자격이 내게 있나 돌아보고 나가나? 그냥 나가지. 그 친구를 보고 나갈 뿐이다.

내가 누굴 만날 때 불편한 느낌을 갖는 만남이란, 만날 상대가 누군지 모를 때다. 편안하고 즐거운 만남, 연애할 때 그러죠. 제가 연애할 때 학교 때문에 일주일에 한번 주말에 만나 데이트했다. 월요일에 떠나보내고 토요일 만남이 기다려져. 왜? 내 사랑하는 사람을 아니까. 나는 본다. 주님은 우리를 만나고 싶어 하는데. 그렇게 만나고 싶어 하시는데. 내가 아직 준비가 안 되었다고 자책하고, 그 만남을 준비하느라 바쁘다.

사랑하는 주님을 만나는데 말이 안 된다. 만남이 기쁘냐, 불편하냐의 관건은 내가 아니라, 내가 만날 사람을 얼마나 아느냐에 있다. 주님을 만남에 있어서 내가 주님을 만날만한가 나를 반성하는 예배자가 아니라, 내가 주님을 얼마나 아는가. 그 분에게 집중하는 사람이 잘 만나는 거다.

여전히 난 부족해! 하는 건, 내가 만나는 그 주님이 누군지 모르는 사람이다. 마치 높은 분을 만나러 갈 때처럼. 격식을 차리고 예의를 갖추고, 예약을 해야 한다. 그처럼 예배를 준비한다면 주님을 잘 모르는 거다.

오늘 그처럼 주님을 잘 모르는 여자에게 주님이 찾아오신다. 이 여자는 목이 말라, 그저 갈증이 나서, 물동이를 들고, 사람들 만나기가 싫어서, 얼굴 마주치기 싫어서. 동네 밖 우물가로 물을 길러나간 여인이다. 사람을 피해 동네 밖으로 나갔는데, 왠 남자를 만난다. 자기 동네사람도 아니고 저 멀리 유대 남자를 만난다. 얼마나 기분나뻐? 그 남자가 물을 달라하니, 독 쏜다. 그리고 늘 그렇듯이, 야 너 아님 내가 물을 못 먹겠나?하고 쏟아낼 남자의 말에 대응할 준비를 한다. 그런데 웬걸. 네게 물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줄 알았더라면 너에게 생수를 주었을 텐데. 하니. 좀 이상하다. 이전에 알던 사람들과 다르다.

나도 그런 물. 영원히 길지 않아도 된다하니, 그런 물 좀 나도 주소. 사람들 피해 물 길러 올 시간도 피할 겸. 이러니 대뜸 그 남자 왈. 가서 네 남편을 데려오라 한다.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어. 지가 물 준다 하니 그런 물 좀 달라했더니, 남편을 데려오라고? 내가 남편이 어딨냐? 남편하나 잘 만나 인생 펴보려 그렇게 애썼는데, 지금 있는 남자도 시원찮고...그러다가 여자가 깨닫는 거야. 야 그러고 보니 내가 참 남편을 못 만났구나! 그러고는 대답하지. 여보슈 내가 남편이 없소. 이렇게 예수님과 말을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점점 더 이 사람에 대해 궁금해져. 당신은 이 물을 준 야곱보다 크냐? 그러다가 예배의 문제까지 간다. 당신네는 예루살렘에서,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드려야 한다하고. 예배를 언급한다.

왜 예배일까? 바쁘고 피곤함에도 불구하고 왜 예배자로 이렇게 나와 있나? 어쩔 땐 알기 어려운 설교 오래하면 엉덩이도 지끈거리고 하는데 말이다. 어쩌면 우리는 이 여자가 궁금해 하는 그 예배, 어디서 진짜 예배를 드릴 수 있느냐? 어디서 내 답답한 마음, 앞길이 캄캄한 내 인생을 뻥 뚫어줄 그 만남을 어디서 가질 수 있는가? 그 어디서 중에 하나인 이곳에 오는 거다.

그런데 예수님이 넌, 예배를 장소의 개념으로 묻니? 참된 예배는 영과 진리로 아버지께 예배를 드린다. 아버지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자를 찾는다고 말하신다. 즉 너희는 예배를 장소와 공간의 문제로 찾니? 우리는 어디로 가면, 어떻게 하면 내 가슴을 뻥 뚫어주고 캄캄한 내 인생의 문제를 속 시원히 풀어줄까?를 물었는데, 주님은 하나님은 영이시다고 말씀하신다. 장소와 상관없다고 하신다. 물질적이지 않으시다. 본질적이시다. 그런데 그 하나님을 아버지로 아는 사람, 그 사람은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릴 수 있다. 그리고 그 예배는 지금 드릴 수 있다. 우리는 우리 가슴 속에 털어내고 푼 시간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만나는 시간이다.

우리 육신의 아버지 말고, 내가 알고 있는 그 아버지 말고, 성경이 말하고 있는 아버지로 만나는 사람. 일어버린 탕자의 아버지. 아들이 유산을 달라면 주는 아버지. 그 재산을 다 처분해 멀리 떠난다는데도 붙잡지도 못하는 아버지. 그리고 그 재산을 다 탕진하고, 굶어죽지 않으려고 아버지께 왔어도, 그 아들에게 대하여 한 번도 네가 가져간 돈 어쨌니?라고 묻지 않으시는 아버지.

우리는 자식이 나간다면 잡아야지 그래 내보내는 아버지가 어딨데? 하지만, 아버지 나는 아버지가 싫어요. 불편해요. 하면 아버지는 잡지 못한다. 만약 그 아들을 잡는 다면 자식을 위해서가 아니라 아버지 자신을 위해 잡을 뿐이다. 자식이 집나간 아버지란 소릴 듣지 않으려고. 그러면 아들이 그렇겠죠. 이것 봐라! 우리아버지는 내가 생각한 그 아버지가 맞지. 저를 위해 아들을 이리 붙잡아놓는 아버지! 진정으로 아들을 위하는 아버지는 아들을 붙잡을 수 없다.

그러나 잡지 않았다고 해서 포기한다는 것은 아니다. 집을 나간순간부터 아들을 기다린다. 언제 돌아올까 동구 밖 낯선 그림자만 봐도 우리 아들일까 늘 돌아본다. 이게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 아버지다. 나 밖에 모르는 아버지. 당신의 자존심을 세우려고 나를 좌지우지 하는 아버지가 아니라. 가장 좋은 것을 내게 주시려는 아버지. 심지어 내가 아버지의 맘을 오해해서 내가 볼 때 선악과가 좋게 여기면 하나님도 막을 수가 없으신 분. 그런 아버지의 심정을 정말 알아드리는 사람. 하나님은 그 사람에게 참된 예배자로, 참된 사람으로 회복시켜주실 준비가 되어있으시다.

생각해보면 내 아들과 내 사랑하는 남편과 오늘 어떻게 지냈니?라고 진솔한 대화를 나눈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그것에 5분의 시간을 낸 적이 별로 없다. 왜 안 될까? 우리 영혼이 사람됨을 많이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우리 영혼이 지난주 말씀처럼 주님이 지으시는 성전이 될 때만이 된다. 인간 스스로는 안 된다. 요즘 아이티 뉴스를 보면 날마다 시체가 널브러진 그 비참한 현장이다. 그렇게 사람이 죽어져 나가는데 는 가슴 아파하면서도, 주님 보시기에 우리 인생이 날마다 아이티인데.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한다는 말도 못하는 사람이 바로 죽어져 나가는 인생인데. 우리 주님 보시기에. 우린 눈에 안보여. 그 눈을 가진 하나님 아버지가 우릴 찾으신다. 우리를 참된 예배자로 거듭나게 하시려고.

2010년 1월 3일 일요일

첫날, 천산을 넘었습니다.


Flying the
Tianshan
Mountains
첫날, 천산을 날다
 
● 천산은 하늘(天)과 맞닿은 산(山)이었습니다.
 
 인천공항에서 부터 한나절을 훨씬 넘는 15시간을 날아 이집트 카이로로 갔습니다. 시간을 거슬러 갔기에 날 밝은 시간이 많아 발 밑에 펼쳐지는 텐산산맥의 비경을 깡그리 볼 수 있었습니다.
 

구년 만에 타 본 국제선

아, 하루 놓친 인천공항, 한뼘 놓친 인천대교

       

 2001년 3월 28일, 미국에서 9년 만에 김포공항을 통해 한국에 들어왔습니다. 그 다음날인 29일 인천공항이 개항했습니다. 하루만 더 늦게 왔어도...으이구!

         암튼 구년만에 그 인천공항에서 국제선을 타게되었습니다. 강릉에서 새벽 걸음에 가면 첫날부터 피곤할까봐 전날 저녁에 공항 근처에서 쉬기로 했습니다. 마침 그날 자정 인천대교가 개통한다지 뭡니까. 개통식 직후 건너는 차량은 통행료도 공짜라니 이 얼마나 좋은지. 하루 일찍와 못가본 인천공항 가는 길에 기쁨이 따불이었습죠.

          밤 10시 쯤 개통식에 가는 차량들인지 경인고속도로는 붐볐습니다. 우리도 네비게이션에 인천대교를 맞춰놓았습니다. 그런데 이 놈(?)이 이상합니다. 인천 대교 불빛은 저 멀리서 보이는데 자꾸 다른 방향으로 인도합니다. 연안부두, 청라지구. 헷갈리는지 꺼졌다가 다시 길안내를 하는데 이번엔 인천에 이런 곳도 다 있나 싶을정도로 후미진 곳으로 안내합니다.

그날 우리는 결국, 영종도를 건넜답니다. 인천대교를 한뼘 남겨 놓고 말이죠.... 아이고!

천산, 말로 다 할 수 없는 곳

그 산을 날았습니다.

          세상에 말로 다 말할 수 없는 곳을 보았습니다. 해서 미술과 음악 그리고 춤이란 장르가 발전되었나 봅니다. 내가 본 것을 어찌 담아 님에게 전할 수 있을런지요. 그저 여기를 함께 오는 수 밖에는 없습니다. 약올리는 것 같아 미안하기도 하네요.

          하늘과 맞닿을 듯 만년설을 쓰고 있는 그 곳에도 사람은 살고 있었습니다. 볼펜 끝으로 콕 찍어놓은 것 같은 수 많은 점들은 그저 점으로만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수많은 점을 잇는 건 다름아닌 길이었습니다. 길은 점과 같이 혹은 외딴 섬같은 인간을 잇는 통로였습니다. 점이 있는 곳에 늘 길이 열려있었습니다. 다른 점으로 가는 길이...

          성경의 땅에 가서 그저 과거의 유물을 돌아보는 일에 그치지 않으려면, 오랜 시간 전부터 지금의 나를 향해 하나님의 사람들이 닦아놓은 그 길을 만나야 겠습니다. 그 길로 주님이 오늘 나에게 오셨으니까요. 이렇게 성경의 땅으로 가는 나에게 그곳은 더이상 과거에 놓인 한 점에 불과한 곳이 아니었습니다.  

 

2010 Copyright 강릉하심

2010년을 시작하며

동방박사들의 별 찾기


한 해를 정리하고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는 시간에 묵상할 좋은 성경 본문을 택하라면,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를 경배하러 가는 길에 겪었던 일에 관한 기록일 것이다. 2010년 0시를 두고 앞에 30분, 뒤에 30분 정도 예배를 드리면서 묵상할 수 있도록 적당히 두 편으로 나눌 수도 있는 본문이기 때문이다. 마태복음 2장 첫 부분은 예루살렘 왕궁 혼란의 정중앙에 있던 동방박사들과 마침내 별의 주인을 찾아 경배를 드리는 동방박사로 크게 나뉜다.

동방에서부터 별을 따라 유대 땅으로 오던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있느냐고 물었다. 그들의 물음은 당대 왕인 헤롯을 포함한 예루살렘 온 성을 혼동 속으로 몰아넣었다.

물론 별을 따라 온 그들에겐 왕을 찾고자 하는 순수한 질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왕의 탄생을 묻는 질문은, 이미 왕으로 유대 땅을 다스리던 헤롯에게는 자신의 자리를 빼앗아 갈 정치적 라이벌의 등장을 의미했다. 유대인의 왕을 섬겨야할 성전 관리자들인 제사장 그룹은, 성전관리자로서 자신들이 지금 누리는 종교적 지위를 헤롯왕과 로마정부와의 적당한 타협에서 얻은 것이었다. 때문에 진정한 유대인 왕의 출현은 부정하게 얻은 종교적 특권을 박탈당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서기관들은 정통 유대인이 아닌 헤롯왕과 그 밑에서 성전 지배권을 얻어 종교적 특권을 누리는 제사장 그룹을 못마땅하게 여긴 전통적 신앙인들 그룹이었다. 이들에겐 유대인 왕의 탄생은, 기존 세력을 쳐부술 민족적 구심체인 메시야의 출현으로서 이스라엘의 독립에 대한 희망을 갖게 했다.

왕의 출현은 저마다 자신이 처한 삶의 자리에 따라 분노, 불안, 그리고 희망 등 제각각 이었다. 유대인의 왕 탄생을 묻는 동방박사들로 인해 혼란스러운 예루살렘 성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처지와 매우 비슷하다.


나는 별을 잃어버린 동방박사


먼저 별을 따라 왕을 찾아 나선 동방박사들은 바로 나의 모습이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꿈, 자신을 행복하고 기쁘게 해줄 왕을 찾아 나선 동방박사들이다. 이들은 깜깜한 밤하늘에 희미한 별빛 하나를 따라 자신의 가족, 일터, 그간의 경력 등 모든 것을 뒤로 하고 길을 떠난 사람들이다. 물론 그 왕은 자신들이 떠나온 모든 것을 한 순간에 보상하고도 남을 존재이리라는 막연한 희망을 품고 말이다. 그렇게 아이들은 부모의 품을 떠나고, 그런 막연한 별빛을 좇아 남자와 여자는 어릴 적 자기 집을 떠난다. 자식들만 부모를 떠나는 게 아니다. 아버지들은 이전과 다른 새로운 왕국, 새로운 나라를 가족들에게 안겨주고 싶어 아침마다 캄캄한 세상 속으로 개중에 가장 밝은 별을 찾아 떠난다. 어머니들은 자식들에게 남편 보단 좀 더 나은 왕을 만나게 해주려고 자식들을 어린이 집과 학교에 떨어뜨려놓고 집을 나선다.

<변화산 정상에서 별을 향해 힘껏 발돋음을 쳤다>

그들이 별을 보고 따라 가는 동안엔 행복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따라가던 별을 놓쳤다. 여기까지 와서 그만둘 수 없어, 별을 대신해서 왕에게 대려다 줄 어떤 사인을 찾는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묻는다. 여기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딨냐?고 얼마나 순박하고 순수한 질문인지.

그런데 그 질문이 온 성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이렇게 예루살렘 성은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의 현장이다. 별을 따라 꿈을 갖고 시작했던 우리네 삶은 여지없이 혼돈, 공허, 그리고 흑암투성이의 삶이 되어버렸다. 어떤 이는 우리를 못 잡아먹어 안달, 어떤 이는 우리 때문에 자기 자리가 어찌 될까 싶어 불안, 어떤 이는 너 때문에 내가 산다고 좋아라 한다. 나와 상관없이 말이다.

나랑 전혀 상관이 없는데도 나는 그게 그렇게 무섭다. 미워하는 상대에겐 당연히 그렇겠지만, 좋아하는 상대에게도 불안키는 마찬가지다. 나는 그 왕을 만난 사람이 아니라, 별을 따라 그 왕을 찾고 있는 사람일 뿐이기 때문이다. 나는 별을 따라 왔을 뿐인데 사람들은 나에게 그 별이 가리키는 왕으로 안내하란다. 특히 아버지들은 이런 스트레스를 안팎으로 많이 받고 산다. 가정에선 자식들과 아내에게, 사회에선 내 위치에 걸맞게 요구하는 임무와 책임 때문에 힘들다. 헤롯왕은

내가 그 왕을 찾아내면 반드시 알려줄 것을 협박한다. 물론 겉으론 경배하고 싶어서라는 둥 말하지만, 우린 그런 부드러움의 내면엔 항상 칼이 숨겨져 있음을 본능적으로 안다. 시골 순박한 어르신들을 공짜 여행이니 선물이니 하면서 싸구려 건강식품을 고가에 덤터기 씌우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보이스 피싱도 한 몫 했다. 그러나 일상엔 더 그런 일 투성이다. 세상사는 게 겁난다. 도시인들이 속으로 감춘 그런 두려움들이 암 같은 온갖 불치병으로 표현되는 것은 아닐까 싶다. 동방박사들에게 부드러움으로 위협하는 헤롯왕처럼 말이다.


말씀에서 별을 찾은 동방박사


그런 위협과 거짓 희망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동방박사들에게 다시 한 번 별을 만날 기회를 주신다. 그것은 성경 말씀이었다. 다윗 성 예루살렘이 아니라 다윗이 태어난 마을 베들레헴에 유대 땅을 다스릴 목자가 나실 것이란 예언자의 말씀을 찾아냈다. 그렇지. 예루살렘은 다윗왕이 만든 도시였지만, 그 다윗왕을 만든(태어난) 곳은 베들레헴이었으니 말이 된다.

말씀 속에 별을 발견하고 난 동방박사들 앞에 출발할 때 보았던 그 별이 나타났다. 별이 장난하나? 생각해 보면 별 자리는 늘 그 자리다. 그저 지구가 움직여 내가 별을 바라보는 위치가 바뀔 뿐이지. 별은 늘 거기에 있었다. 지구 땅 어디에서나 누구나 찾을 수 있는 별. 단지 별을 향하는 내 위치를 수정해야 할 뿐이다. 내 앞에 별이 있는 게 아니라 별 앞에 내가 있을 뿐이다.

성경 말씀은 별의 위치를 알려 주는 책이 아니라, 별 앞에 내가 어디에 있는 지를 알려준다. 동방박사들이 지금 서 있어야 할 자리가 예루살렘이 아니라 베들레헴임을 알려 주듯이 성경은 지금 내가 어디에 서 있는 지 말해준다. 그 별을 잃어버려 세상 속에 자리하고 있으면, 내 삶의 주변이 주는 것은 위협, 불안, 헛된 희망뿐이다.

2010은 하나님 말씀을 듣는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 속에 머나먼 동방 저쪽에서 시작되었던 내 꿈을 다시 찾게 되었으면 좋겠다. 별을 잃어버려 예루살렘 거리를 헤매는 내 모습을 인정하기 싫어 시간이 지났다고, 그때 내가 아니라고, 이렇게 살만하다고 하면서 변명하며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

무섭지만 다시 물어보자.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이가 어디계시냐? 사람들에게 말고 성경 말씀 속에서 찾자. 75세 별 볼일 없는 노인네를 부르시고, 이스마엘이나 잘 살기를 바랍니다요 라고 변명하는 아브라함에게 23년을 기다리시고 다시 오셔서 그를 부르시는 하나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니 내 앞에서 완전하라’고 말씀하시면서 아브람이 포기한 걸 아브라함으로 이름을 바꿔주시면서 다시 꿈을 꾸게 하시는 하나님.


2010년 말씀 속에서 내가 그토록 그리던 별을 찾자. 그 별은 내가 잃어버릴 수 없는 별이다. 그 별은 찾도록 찾아 마침내 잃어버린 한 양을 어깨에 메고 기뻐하며 돌아오는 선한목자의 별이기 때문이다.

2009년 11월 29일 일요일

어, 차를 놓쳤다

수요일 저녁 안양까지 다니며 하심성경공부중이다. 벌써 2주째. 저녁 모임이라, 10직전에 끝나, 안양역에서 전철타고 강남고속터미널에 가서 심야 고속버스 11시 30분 막차를 타고 강릉에 내려온다.


오늘은 그 차를 놓쳤다.


안양역에서 타서 금정역에서 갈아타야 는데 수원행 급행이었다. 지하철도 급행이 있더라. 해도 늘 타고 다니는 후배 녀석이 금정역은 환승역이니 괜찮타하더니 웬걸.

게다가, 다시 돌아온 금정역 허둥지둥 7호선 갈아타는 곳 표지판만 보고 뛰다가, 반대방향으로 가버렸다. 이놈의 전철 표지판에 도라산, 오이도 행이라 쓰여 있는 표지판만 봐가지곤, 과천 방향으로 가는 내가 탈 것이 뭔지 도통 알 수가 없다. 게다가 이곳은 국철, KTX, 전철 다 지나는 곳이기에 플랫홈이 무지 많다. 모르면 물어보는 게 최고. 반대편으로 가라고. 고개를 돌려보니, 아차 열차가 이미 도착했다. 뛰어봤자 헛수고.

그런데, 그 쪽은 아까 내가 내린 1호선 바로 옆. 으이구, 그때 물어봤어야 했는데.

다시 올 차 기다리는 시간은 왜 이리 긴지. 아무리 계산해도 삼사 분 오바다. 총신대역에서 환승 3호선을 기다리는데 이미 11시 30분이 넘었다.



어머니 집에 가자!


어머니 집은 영원한 내 집이다. 내 집은 분명, 내 마누라, 내 새끼들이 있는 곳일 텐데 실상은 그게 아니다. 포장마차에서 떡볶이, 꼬치 사가지고 새벽 1시에 들어가도 편하다. 울 엄니는 그때까지 자식 기다리는 라 잠도 없다. 다 큰 자식, 당신이 돌봄을 기대야 할 자식인데. 밤에 싸돌아다니는 게 안쓰러운지 계속 어디까지 왔냐고 전화시다. 어머니에게 자식은 영원한 자식이다.


늦잠을 자도 편하다. 울 엄니는 막내자식 아침 밥 주려고, 아침부터 안 일어 나냐고 성화시다. 여즉 저러신다. 데리고 사는 울 조카 대학 졸업반인데, 어제 나하고 같이 떡볶이 먹고 배부르고 얼굴도 부엇을텐데. 학교 안가냐고 연신 깨우신다. 꿈쩍도 안는 애를...


그 소리에 잠 다 깼다.

그래도 그 소리가 이젠 귀엽다. 나도 나이를 먹었나보다. 세수하고 어머니가 차려준 밥상 받는다. 장모님이 차려주시는 밥상은 그리 부담스럽더구만. 내 일어나는 걸 보고 국 데우신다고 가스레인지에 불 켜면 납두시라고 얼른 손사래를 치는데. 울 엄니 주는 밥은 늦게 일어났어도 넉살좋게 그냥 받는다. 자식이 뭔지. 밥 먹는데 옆에서 연신 잔소리시다. 세수하고 휴지로 콧구멍 닦으라신다. 세수할 때 코 풀었다는데도 푼 것과 휴지로 닦는 건 다르단다. 어제 어묵 먹으면서 내가 코를 좀 팠나보다. 세심도 하셔라... 자식 얼굴이 그리 좋을까...


오랜만에 교보문고에 갔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갈수 있나. 아무리 온라인으로 책을 산다 해도 책구경만은 오프라인이 좋다. 최소한 각 분야의 베스트셀러 등은 다 펼쳐봐야지. 본 것도 있고 안 본 것은 투성이고. 그래도 본 책 몇 권 걸려있는걸 보니 좀 안심되고, 나름 뿌듯하다. 그 시골서 이 만큼 봤으면 괜찮은 거지.

그 사이. 어디냐고 묻는 울 마누라 문자 전송. 얼른 집에 안 들어오고 뭐하냐는 소리 같아 찔린다. 한 시간만 책 구경하다 가겠노라고 답신. 글쎄 한 시간 만에 갈까 과연 내가? 좋은 책은 얼른 핸폰으로 찍고. 책 구매야 당연 온라인인지. 들고 가기도 힘들뿐더러, 가격도 훨씬 싸다.


책들을 둘러보면서, 내가 그리 편협한 사고를 하는 목사가 아님에도 눈살이 찌푸려지는 책이 있었다. 통일교 교주 문선명의 책. 세상의 평화 어쩌구... 그것도 우리나라 출판사중 내로라하는 김영사에서 펴냈다. 베스트셀러 진열장에도 자리 잡고 앉았다. 사람들의 영혼을 팔아 세계평화에 기여했나보다. 가정을 종교라는 이름으로 파괴해놓고 세계 질서를 재편했나보지. 웬만하면 책 목차라도 들여 볼 텐데 만지기도 싫었다. 김영사 책들은 사보고 싶지도 않을 만큼. 외국 교인들 통해 꽃 팔아 벌어들인 돈 한국에 푸는 꼴이니 경제적으론 한국 사회에 인정을 받나보다. 얼마 전에 읽은 <코리안루트>라는 책에서도 한국 고고학계의 유명하신 분이 선문대 교수였지 아마도. 돈 안 되는 인문학. 거기다가 고고학은 더 더욱이. 그런 학문에 돈을 대주는 통일교. 역시 꿩 잡는 게 매인가. 간만에 책 구경 온 기분 확 잡쳤다. 이럴 땐 빨리 좋은 책잡아야... 안도현 시인의 책 한권과 노래 좋아하는 린아책 한권을 집었다.


안도현의 이름이 눈에 확 뜨였다. '안도현의 노트에 베끼고 싶은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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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출처 : cafe.naver.com


책 구경 값은 해야 할 판인데 잘됐다. 간결한 문체로 삶의 깊은 맛을 담아내는 시인. 그가 골라낸 다른 시인들의 시들 역시 그답다. 시를 보며 깔깔대며 웃을 수 있는 시. 시를 읽으며 그림이 떠오르는 시, 시를 대하며 나의 옛 시절을 생각나게 하는 시, 시 속에서 내가 무심코 지났던 이들도 사연이 있고, 친구가 있음을 다시 한 번 보게 해준 시들.


서문에서 부터 내게 감동을 준 책. "문학잡지든 시집이든, 전문시인의 시든 습작기 학생의 시든 가리지 않고 밥 먹듯이 읽는다"는 시인 안도현. 즐겁기 때문에 읽고, 자신의 문학적 긴장을 잃지 않으려고 읽는단다. 목사인 나는 성경을 어떻게 대하고 있나?


다 알고 있다고, 웬만큼 읽었다고, 게다가 성경공부와 설교에 필요한 건 하심으로 끝냈다고

정작 성경은 거들떠도 보지 않는 목사. 시를 밥 먹듯이 즐겁게 읽는 직업이 시인이라 말하는 그 말 앞에 부끄럽다.


글을 대하면서 부끄럽기는 첨이다. 나도 시인이 돼야겠다. 시를 쓰는 시인이 아니라, 수천 년 동안 하나님의 사람들 가슴에 담겨져 내려온 말들. 뭇 영혼의 마음들이 글로 된 바로 그 책. 그 책을 밥 먹듯이 재밌게 읽어가는 시인이 돼야겠다. 그 속에서 안도현이 노트에 베껴내듯 나도 내 노트에 베껴낸 글들이 있어야겠다. 내 것을 끄집어 낼 일이 아니라, 그 책 속의 글들을. 책 속에 살아있는 시인들의 시들을. 그 시인들이 담아놓은 글들을 뽑아내야겠다. 마침내 그 말들이 내 속에서 다 녹아져 내 살이 되고 피가 되어 나오는 글들이 돼야겠다. 나도 이쯤 되면 시인이라 말할 수 있을까. 생각만 해도 이미 시인이 다 된 듯싶다.


그런데 이젠 집에 가야된다. 

벌써 두 시간이 넘었다. 어이쿠 큰일 났다. 12시 차는 탔어야 3시 어간에 린아를 어린이집에서 데려오는 건데. 장모에게 팍 찍혔다. 아니나 다를까, 3시가 되니 집에서 온 핸폰. ‘어딨쯤왔어?’ 깔린 음정의 장모님 목소리. 난 또 여지없이 죄인이 된다. 기들어가는 소리로, ‘네 이천쯤 왔어요...’, ‘그럼 우리가 린아 데리러 가야겠네..’, ‘ 네!..., 탈깍. 내 가슴도 털썩.


에고 전화 한통에 손주 데려올 걱정하는 순수한 장모, 몹쓸 외할머니만들었당!

내 자식 맡긴 죄인이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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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미안해하지 말자. 울 집에 가는 건데. 그래야 울 엄마가 되는 건데.


2009년 11월 23일 월요일

이스라엘 다녀왔습니다.

10월 19일 부터 28일까지 십일 일정으로 출애굽 여정(이집트, 요르단)과 이스라엘을 다녀왔습니다.
함께 다녀온 분들의 사진과 더불어 여행 일정을 동영상으로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