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 저녁 안양까지 다니며 하심성경공부중이다. 벌써 2주째. 저녁 모임이라, 10직전에 끝나, 안양역에서 전철타고 강남고속터미널에 가서 심야 고속버스 11시 30분 막차를 타고 강릉에 내려온다.
오늘은 그 차를 놓쳤다.
안양역에서 타서 금정역에서 갈아타야 는데 수원행 급행이었다. 지하철도 급행이 있더라. 해도 늘 타고 다니는 후배 녀석이 금정역은 환승역이니 괜찮타하더니 웬걸.
게다가, 다시 돌아온 금정역 허둥지둥 7호선 갈아타는 곳 표지판만 보고 뛰다가, 반대방향으로 가버렸다. 이놈의 전철 표지판에 도라산, 오이도 행이라 쓰여 있는 표지판만 봐가지곤, 과천 방향으로 가는 내가 탈 것이 뭔지 도통 알 수가 없다. 게다가 이곳은 국철, KTX, 전철 다 지나는 곳이기에 플랫홈이 무지 많다. 모르면 물어보는 게 최고. 반대편으로 가라고. 고개를 돌려보니, 아차 열차가 이미 도착했다. 뛰어봤자 헛수고.

그런데, 그 쪽은 아까 내가 내린 1호선 바로 옆. 으이구, 그때 물어봤어야 했는데.
다시 올 차 기다리는 시간은 왜 이리 긴지. 아무리 계산해도 삼사 분 오바다. 총신대역에서 환승 3호선을 기다리는데 이미 11시 30분이 넘었다.
어머니 집에 가자!
어머니 집은 영원한 내 집이다. 내 집은 분명, 내 마누라, 내 새끼들이 있는 곳일 텐데 실상은 그게 아니다. 포장마차에서 떡볶이, 꼬치 사가지고 새벽 1시에 들어가도 편하다. 울 엄니는 그때까지 자식 기다리는 라 잠도 없다. 다 큰 자식, 당신이 돌봄을 기대야 할 자식인데. 밤에 싸돌아다니는 게 안쓰러운지 계속 어디까지 왔냐고 전화시다. 어머니에게 자식은 영원한 자식이다.
늦잠을 자도 편하다. 울 엄니는 막내자식 아침 밥 주려고, 아침부터 안 일어 나냐고 성화시다. 여즉 저러신다. 데리고 사는 울 조카 대학 졸업반인데, 어제 나하고 같이 떡볶이 먹고 배부르고 얼굴도 부엇을텐데. 학교 안가냐고 연신 깨우신다. 꿈쩍도 안는 애를...
그 소리에 잠 다 깼다.
그래도 그 소리가 이젠 귀엽다. 나도 나이를 먹었나보다. 세수하고 어머니가 차려준 밥상 받는다. 장모님이 차려주시는 밥상은 그리 부담스럽더구만. 내 일어나는 걸 보고 국 데우신다고 가스레인지에 불 켜면 납두시라고 얼른 손사래를 치는데. 울 엄니 주는 밥은 늦게 일어났어도 넉살좋게 그냥 받는다. 자식이 뭔지. 밥 먹는데 옆에서 연신 잔소리시다. 세수하고 휴지로 콧구멍 닦으라신다. 세수할 때 코 풀었다는데도 푼 것과 휴지로 닦는 건 다르단다. 어제 어묵 먹으면서 내가 코를 좀 팠나보다. 세심도 하셔라... 자식 얼굴이 그리 좋을까...
오랜만에 교보문고에 갔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갈수 있나. 아무리 온라인으로 책을 산다 해도 책구경만은 오프라인이 좋다. 최소한 각 분야의 베스트셀러 등은 다 펼쳐봐야지. 본 것도 있고 안 본 것은 투성이고. 그래도 본 책 몇 권 걸려있는걸 보니 좀 안심되고, 나름 뿌듯하다. 그 시골서 이 만큼 봤으면 괜찮은 거지.
그 사이. 어디냐고 묻는 울 마누라 문자 전송. 얼른 집에 안 들어오고 뭐하냐는 소리 같아 찔린다. 한 시간만 책 구경하다 가겠노라고 답신. 글쎄 한 시간 만에 갈까 과연 내가? 좋은 책은 얼른 핸폰으로 찍고. 책 구매야 당연 온라인인지. 들고 가기도 힘들뿐더러, 가격도 훨씬 싸다.
책들을 둘러보면서, 내가 그리 편협한 사고를 하는 목사가 아님에도 눈살이 찌푸려지는 책이 있었다. 통일교 교주 문선명의 책. 세상의 평화 어쩌구... 그것도 우리나라 출판사중 내로라하는 김영사에서 펴냈다. 베스트셀러 진열장에도 자리 잡고 앉았다. 사람들의 영혼을 팔아 세계평화에 기여했나보다. 가정을 종교라는 이름으로 파괴해놓고 세계 질서를 재편했나보지. 웬만하면 책 목차라도 들여 볼 텐데 만지기도 싫었다. 김영사 책들은 사보고 싶지도 않을 만큼. 외국 교인들 통해 꽃 팔아 벌어들인 돈 한국에 푸는 꼴이니 경제적으론 한국 사회에 인정을 받나보다. 얼마 전에 읽은 <코리안루트>라는 책에서도 한국 고고학계의 유명하신 분이 선문대 교수였지 아마도. 돈 안 되는 인문학. 거기다가 고고학은 더 더욱이. 그런 학문에 돈을 대주는 통일교. 역시 꿩 잡는 게 매인가. 간만에 책 구경 온 기분 확 잡쳤다. 이럴 땐 빨리 좋은 책잡아야... 안도현 시인의 책 한권과 노래 좋아하는 린아책 한권을 집었다.
안도현의 이름이 눈에 확 뜨였다. '안도현의 노트에 베끼고 싶은 시'
책 구경 값은 해야 할 판인데 잘됐다. 간결한 문체로 삶의 깊은 맛을 담아내는 시인. 그가 골라낸 다른 시인들의 시들 역시 그답다. 시를 보며 깔깔대며 웃을 수 있는 시. 시를 읽으며 그림이 떠오르는 시, 시를 대하며 나의 옛 시절을 생각나게 하는 시, 시 속에서 내가 무심코 지났던 이들도 사연이 있고, 친구가 있음을 다시 한 번 보게 해준 시들.
서문에서 부터 내게 감동을 준 책. "문학잡지든 시집이든, 전문시인의 시든 습작기 학생의 시든 가리지 않고 밥 먹듯이 읽는다"는 시인 안도현. 즐겁기 때문에 읽고, 자신의 문학적 긴장을 잃지 않으려고 읽는단다. 목사인 나는 성경을 어떻게 대하고 있나?
다 알고 있다고, 웬만큼 읽었다고, 게다가 성경공부와 설교에 필요한 건 하심으로 끝냈다고
정작 성경은 거들떠도 보지 않는 목사. 시를 밥 먹듯이 즐겁게 읽는 직업이 시인이라 말하는 그 말 앞에 부끄럽다.
글을 대하면서 부끄럽기는 첨이다. 나도 시인이 돼야겠다. 시를 쓰는 시인이 아니라, 수천 년 동안 하나님의 사람들 가슴에 담겨져 내려온 말들. 뭇 영혼의 마음들이 글로 된 바로 그 책. 그 책을 밥 먹듯이 재밌게 읽어가는 시인이 돼야겠다. 그 속에서 안도현이 노트에 베껴내듯 나도 내 노트에 베껴낸 글들이 있어야겠다. 내 것을 끄집어 낼 일이 아니라, 그 책 속의 글들을. 책 속에 살아있는 시인들의 시들을. 그 시인들이 담아놓은 글들을 뽑아내야겠다. 마침내 그 말들이 내 속에서 다 녹아져 내 살이 되고 피가 되어 나오는 글들이 돼야겠다. 나도 이쯤 되면 시인이라 말할 수 있을까. 생각만 해도 이미 시인이 다 된 듯싶다.
그런데 이젠 집에 가야된다.
벌써 두 시간이 넘었다. 어이쿠 큰일 났다. 12시 차는 탔어야 3시 어간에 린아를 어린이집에서 데려오는 건데. 장모에게 팍 찍혔다. 아니나 다를까, 3시가 되니 집에서 온 핸폰. ‘어딨쯤왔어?’ 깔린 음정의 장모님 목소리. 난 또 여지없이 죄인이 된다. 기들어가는 소리로, ‘네 이천쯤 왔어요...’, ‘그럼 우리가 린아 데리러 가야겠네..’, ‘ 네!..., 탈깍. 내 가슴도 털썩.
에고 전화 한통에 손주 데려올 걱정하는 순수한 장모, 몹쓸 외할머니만들었당!
내 자식 맡긴 죄인이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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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미안해하지 말자. 울 집에 가는 건데. 그래야 울 엄마가 되는 건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