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월 3일 일요일

2010년을 시작하며

동방박사들의 별 찾기


한 해를 정리하고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는 시간에 묵상할 좋은 성경 본문을 택하라면,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를 경배하러 가는 길에 겪었던 일에 관한 기록일 것이다. 2010년 0시를 두고 앞에 30분, 뒤에 30분 정도 예배를 드리면서 묵상할 수 있도록 적당히 두 편으로 나눌 수도 있는 본문이기 때문이다. 마태복음 2장 첫 부분은 예루살렘 왕궁 혼란의 정중앙에 있던 동방박사들과 마침내 별의 주인을 찾아 경배를 드리는 동방박사로 크게 나뉜다.

동방에서부터 별을 따라 유대 땅으로 오던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있느냐고 물었다. 그들의 물음은 당대 왕인 헤롯을 포함한 예루살렘 온 성을 혼동 속으로 몰아넣었다.

물론 별을 따라 온 그들에겐 왕을 찾고자 하는 순수한 질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왕의 탄생을 묻는 질문은, 이미 왕으로 유대 땅을 다스리던 헤롯에게는 자신의 자리를 빼앗아 갈 정치적 라이벌의 등장을 의미했다. 유대인의 왕을 섬겨야할 성전 관리자들인 제사장 그룹은, 성전관리자로서 자신들이 지금 누리는 종교적 지위를 헤롯왕과 로마정부와의 적당한 타협에서 얻은 것이었다. 때문에 진정한 유대인 왕의 출현은 부정하게 얻은 종교적 특권을 박탈당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서기관들은 정통 유대인이 아닌 헤롯왕과 그 밑에서 성전 지배권을 얻어 종교적 특권을 누리는 제사장 그룹을 못마땅하게 여긴 전통적 신앙인들 그룹이었다. 이들에겐 유대인 왕의 탄생은, 기존 세력을 쳐부술 민족적 구심체인 메시야의 출현으로서 이스라엘의 독립에 대한 희망을 갖게 했다.

왕의 출현은 저마다 자신이 처한 삶의 자리에 따라 분노, 불안, 그리고 희망 등 제각각 이었다. 유대인의 왕 탄생을 묻는 동방박사들로 인해 혼란스러운 예루살렘 성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처지와 매우 비슷하다.


나는 별을 잃어버린 동방박사


먼저 별을 따라 왕을 찾아 나선 동방박사들은 바로 나의 모습이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꿈, 자신을 행복하고 기쁘게 해줄 왕을 찾아 나선 동방박사들이다. 이들은 깜깜한 밤하늘에 희미한 별빛 하나를 따라 자신의 가족, 일터, 그간의 경력 등 모든 것을 뒤로 하고 길을 떠난 사람들이다. 물론 그 왕은 자신들이 떠나온 모든 것을 한 순간에 보상하고도 남을 존재이리라는 막연한 희망을 품고 말이다. 그렇게 아이들은 부모의 품을 떠나고, 그런 막연한 별빛을 좇아 남자와 여자는 어릴 적 자기 집을 떠난다. 자식들만 부모를 떠나는 게 아니다. 아버지들은 이전과 다른 새로운 왕국, 새로운 나라를 가족들에게 안겨주고 싶어 아침마다 캄캄한 세상 속으로 개중에 가장 밝은 별을 찾아 떠난다. 어머니들은 자식들에게 남편 보단 좀 더 나은 왕을 만나게 해주려고 자식들을 어린이 집과 학교에 떨어뜨려놓고 집을 나선다.

<변화산 정상에서 별을 향해 힘껏 발돋음을 쳤다>

그들이 별을 보고 따라 가는 동안엔 행복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따라가던 별을 놓쳤다. 여기까지 와서 그만둘 수 없어, 별을 대신해서 왕에게 대려다 줄 어떤 사인을 찾는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묻는다. 여기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딨냐?고 얼마나 순박하고 순수한 질문인지.

그런데 그 질문이 온 성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이렇게 예루살렘 성은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의 현장이다. 별을 따라 꿈을 갖고 시작했던 우리네 삶은 여지없이 혼돈, 공허, 그리고 흑암투성이의 삶이 되어버렸다. 어떤 이는 우리를 못 잡아먹어 안달, 어떤 이는 우리 때문에 자기 자리가 어찌 될까 싶어 불안, 어떤 이는 너 때문에 내가 산다고 좋아라 한다. 나와 상관없이 말이다.

나랑 전혀 상관이 없는데도 나는 그게 그렇게 무섭다. 미워하는 상대에겐 당연히 그렇겠지만, 좋아하는 상대에게도 불안키는 마찬가지다. 나는 그 왕을 만난 사람이 아니라, 별을 따라 그 왕을 찾고 있는 사람일 뿐이기 때문이다. 나는 별을 따라 왔을 뿐인데 사람들은 나에게 그 별이 가리키는 왕으로 안내하란다. 특히 아버지들은 이런 스트레스를 안팎으로 많이 받고 산다. 가정에선 자식들과 아내에게, 사회에선 내 위치에 걸맞게 요구하는 임무와 책임 때문에 힘들다. 헤롯왕은

내가 그 왕을 찾아내면 반드시 알려줄 것을 협박한다. 물론 겉으론 경배하고 싶어서라는 둥 말하지만, 우린 그런 부드러움의 내면엔 항상 칼이 숨겨져 있음을 본능적으로 안다. 시골 순박한 어르신들을 공짜 여행이니 선물이니 하면서 싸구려 건강식품을 고가에 덤터기 씌우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보이스 피싱도 한 몫 했다. 그러나 일상엔 더 그런 일 투성이다. 세상사는 게 겁난다. 도시인들이 속으로 감춘 그런 두려움들이 암 같은 온갖 불치병으로 표현되는 것은 아닐까 싶다. 동방박사들에게 부드러움으로 위협하는 헤롯왕처럼 말이다.


말씀에서 별을 찾은 동방박사


그런 위협과 거짓 희망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동방박사들에게 다시 한 번 별을 만날 기회를 주신다. 그것은 성경 말씀이었다. 다윗 성 예루살렘이 아니라 다윗이 태어난 마을 베들레헴에 유대 땅을 다스릴 목자가 나실 것이란 예언자의 말씀을 찾아냈다. 그렇지. 예루살렘은 다윗왕이 만든 도시였지만, 그 다윗왕을 만든(태어난) 곳은 베들레헴이었으니 말이 된다.

말씀 속에 별을 발견하고 난 동방박사들 앞에 출발할 때 보았던 그 별이 나타났다. 별이 장난하나? 생각해 보면 별 자리는 늘 그 자리다. 그저 지구가 움직여 내가 별을 바라보는 위치가 바뀔 뿐이지. 별은 늘 거기에 있었다. 지구 땅 어디에서나 누구나 찾을 수 있는 별. 단지 별을 향하는 내 위치를 수정해야 할 뿐이다. 내 앞에 별이 있는 게 아니라 별 앞에 내가 있을 뿐이다.

성경 말씀은 별의 위치를 알려 주는 책이 아니라, 별 앞에 내가 어디에 있는 지를 알려준다. 동방박사들이 지금 서 있어야 할 자리가 예루살렘이 아니라 베들레헴임을 알려 주듯이 성경은 지금 내가 어디에 서 있는 지 말해준다. 그 별을 잃어버려 세상 속에 자리하고 있으면, 내 삶의 주변이 주는 것은 위협, 불안, 헛된 희망뿐이다.

2010은 하나님 말씀을 듣는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 속에 머나먼 동방 저쪽에서 시작되었던 내 꿈을 다시 찾게 되었으면 좋겠다. 별을 잃어버려 예루살렘 거리를 헤매는 내 모습을 인정하기 싫어 시간이 지났다고, 그때 내가 아니라고, 이렇게 살만하다고 하면서 변명하며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

무섭지만 다시 물어보자.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이가 어디계시냐? 사람들에게 말고 성경 말씀 속에서 찾자. 75세 별 볼일 없는 노인네를 부르시고, 이스마엘이나 잘 살기를 바랍니다요 라고 변명하는 아브라함에게 23년을 기다리시고 다시 오셔서 그를 부르시는 하나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니 내 앞에서 완전하라’고 말씀하시면서 아브람이 포기한 걸 아브라함으로 이름을 바꿔주시면서 다시 꿈을 꾸게 하시는 하나님.


2010년 말씀 속에서 내가 그토록 그리던 별을 찾자. 그 별은 내가 잃어버릴 수 없는 별이다. 그 별은 찾도록 찾아 마침내 잃어버린 한 양을 어깨에 메고 기뻐하며 돌아오는 선한목자의 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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